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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문화일반

천성산 원효암, 수원·용인 성지순례 진행… 불심으로 만나는 정조의 길

김경희 기자 입력 2025.04.03 12:30 수정 2025.04.03 12:30

용주사·수원화성·수원포교당·와우정사 등 역사·문화적 사찰 탐방
오는 5월 22일 진행, 교통·해설 포함 참가비 8만 원

용주사 전경
[문화·종교] 천성산 원효암이 주최하는 제12차 성지순례가 오는 5월 22일 경기도 화성, 수원, 용인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번 순례는 조선 후기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왕실원찰 ‘용주사’와 조선 성곽 건축의 백미 ‘수원화성’을 비롯하여, 수원포교당, 수원 팔달사, 용인의 와우정사 등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사찰과 유적을 두루 탐방하는 여정이다.

용주사에서 시작된 마음의 순례

불심을 따라 걷는 순례의 첫걸음은, 경기도 화성의 작은 고개 너머, 잔잔한 숲과 고요한 길을 지나 도착한 용주사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단순한 절이 아니다.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직접 창건한, 유례없는 왕실 사찰, 다시 말해 ‘왕실원찰’이다.

정조는 재위 13년인 1789년, 뒤주에 갇혀 쓸쓸히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수원 화성에 능을 새로 조성하고, 이듬해 그 곁에 사찰을 짓게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대웅보전 낙성식을 앞둔 어느 날 밤, 정조는 꿈을 꾼다.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이었다. 정조는 그 꿈을 단지 길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왕이 되지 못하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드디어 하늘로 오르는 순간, 그의 한이 풀린 징조라 여겼을 것이다. 그렇게 절의 이름은 ‘용주사(龍珠寺)’, 용이 구슬을 문 절이라 불리게 되었다.

용주사의 역사는 그보다도 훨씬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에 고승 혜소가 거처했던 ‘갈양사’라는 절이 이곳에 있었고, 훗날 폐사지가 되었던 그 터에 정조가 새롭게 사찰을 세운 것이다. 오늘날 경내에는 갈양사의 흔적으로 전해지는 7층 석조 사리탑, 그리고 6개의 돌기둥으로 지탱된 천보루가 남아 있다.

천보루를 지나 대웅보전에 들어서면, 세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그 뒷벽에는 거대한 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석가모니불과 여러 보살, 그리고 10대 제자가 정성껏 그려진 이 탱화는, 김홍도의 화풍이 느껴진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흥미로운 건 탱화 아래 적힌 문구다. “자궁저하 수만세(慈宮邸下 壽萬歲).” ‘자궁’이란 임금의 어머니를 뜻하니, ‘어머니께서는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하는 글귀다. 정조는 이 절에서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 살아계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건강과 장수를 함께 기원한 것이다.

바로 옆 융건릉에는 사도세자와 정조, 그리고 혜경궁 홍씨의 능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효심 깊은 왕의 진심이 깃든 이 사찰은, 단지 기도와 예불을 위한 공간을 넘어서, 가족을 향한 사랑과 역사 속 한 인물의 깊은 슬픔과 희망이 살아 있는 장소다.
이 여정은 단지 불상을 보고 절을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다. 역사의 숨결 속에 스며든 사람의 이야기, 믿음의 힘, 그리고 회복과 화해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조용한 깨달음의 길이다.

정조대왕의 정치적 비전과 효심이 응축된 계획도시, 수원화성

수원화성 장안문
이어지는 행선지는 정조대왕의 정치적 비전과 효심이 응축된 계획도시, 수원화성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 뒤, 천하의 명당이라 불린 화산 자락으로 묘소를 옮겨 현륭원을 조성하였다. 이와 함께 서울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적 거점이자 개혁의 실현 공간으로서 수원 신도시를 계획했고, 그 핵심이 바로 수원화성이다.

1794년부터 1796년까지 단 2년 만에 축조된 이 성곽은 정약용의 설계를 바탕으로 한 서양 과학기술과 거중기 등 당대의 첨단 기술이 총동원된 도시방어시설이다. 평산성 구조를 바탕으로 군사·행정·경제 기능을 모두 갖춘 수원화성은 단순한 왕릉 보호 목적을 넘어, 개혁정치를 실행하고 백성과 가까이 다가서려는 정조의 정치 실험장이었다.
ⓒ 웅상뉴스(웅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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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총 길이는 약 5.7km에 이르며, 4대 성문(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과 방화수류정, 서장대, 봉돈 등 주요 건축물은 기능성과 미학을 모두 갖추고 있다. 성벽에는 원총안과 근총안이 설치되어 방어 기능이 과학적으로 구현되었고, 성내에는 화성행궁, 시장, 교육기관까지 조성되어 진정한 의미의 ‘계획도시’가 완성되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훼손되었으나, 정조가 남긴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될 수 있었다. 설계도, 공사기록, 재료명세 등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기록된 이 문서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으며, 수원화성의 보존과 세계적 인정을 가능케 했다.

전국 최초의 포교당인 수원포교당

수원포교당
또한 이번 순례에서는 전국 최초의 포교당인 수원포교당도 방문하게 된다. 포교당은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이자 전국 최초의 포교당인 현,조계사를 비롯하여 대한불교조계종 월정사 강릉포교당과 함께 전국3대 포교당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1920년 4월8일 '수원불교포교소'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관음전(설법전)에는 1927년 금강산마하연에서 이운해온 "관음보살좌상"이 있다. 문화재적 가치가 높을 뿐만아니라 기도를 들어주는 영통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수원화성은 오늘날 수원시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로 기능하며, 문화와 역사의 보고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성곽 탐방과 더불어 화성행궁, 수원화성박물관, 남문시장 등 다양한 콘텐츠도 함께 즐길 수 있어 순례객들에게 더욱 풍부한 문화체험을 제공한다.

팔달사 – 도심 속 고요를 지키는 수원의 옛 절

팔달사
화성행궁을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분주한 도심 한복판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는 듯한 사찰, 팔달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원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알려진 이곳은, 거창하거나 웅장한 외관은 아니지만, 오히려 소박한 담장과 낮은 기와지붕이 시간의 깊이를 담은 듯한 고요함을 전한다.

도심 속에서도 마치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이 공간은, 잠시 들러도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절이다.
복잡한 일상과 순례의 여정 속에서 짧게 숨을 고르듯, 이곳을 찾는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경내를 거닐고, 오래된 불상의 얼굴을 바라본다.

팔달사는 비록 크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러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인상을 남긴다.
수원의 역사와 함께 숨 쉬어온 작은 사찰, 그리고 조용한 명상의 시간. 팔달사는 그런 의미에서, 이 불교 순례길의 중간 쉼표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세계 불상 3천 점 봉안…와우정사, 불교문화의 보고

ⓒ 웅상뉴스(웅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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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방문지인 와우정사는 경기도 용인시 해곡동 연화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1970년 실향민 해월 삼장법사(속명 김해근)가 민족 화합과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호국사찰이다. 연화산의 48개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싼 경내에는 인도, 미얀마, 스리랑카, 중국, 태국 등지에서 모셔온 불상 3천여 점이 봉안되어 있어, 불교문화의 다양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와우정사의 주요 볼거리로는 절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불두(佛頭), 산중턱에 누워 있는 와불, 12톤 규모의 ‘통일의 종’(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타종),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청동 미륵반가사유상, 석조 약사여래불 등이 있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하며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석가모니 고행상은 와우정사의 상징적 존재로, 참배객들의 깊은 감동을 이끌어낸다.

이번 순례는 참가비 8만 원으로 진행되며, 문화해설과 교통, 식사가 포함된다. 주최 측은 “조선의 왕실 불심과 민중의 염원이 깃든 성지를 함께 걸으며,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불교문화의 본질을 체험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천성산 원효암은 순례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4월 5일부터 7일까지 춘계 산신재를,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춘계 용왕재를 봉행할 예정이다. 전통 불교의례를 통해 불자들과 순례자들에게 더욱 깊은 영적 울림을 전할 계획이다.

원효암 관계자는 “신라의 원효대사와 조선의 정조대왕은 시대는 달라도 백성을 향한 뜻에서 서로 통합니다. 천성산 원효암에서 시작된 역사 순례의 여정은, 조선이 남긴 계획도시 수원화성으로 이어집니다. 성곽이 품은 정조의 뜻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시기를 권합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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