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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인터뷰2025] 통도사 문수원 수안 스님, 선서화로 만들어가는 평화로운 세상

김경희 기자 입력 2025.02.07 07:30 수정 2025.02.07 07:30

수안 스님, 세계적인 선서화의 대가
2025년 을사년, 넉넉하게 나누어
진심 담아 달력 41년간 제작

↑↑ 문수원 수안 스님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통도사 문수원에 계시는 선서화의 대가 수안 스님, 설 연휴 전에 찾아뵈었다. 삼배를 올렸다. 스님에게 처음으로 한 삼배였다.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몰라서 머뭇거리면서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엉성한 모양새였다. 민망해서 어색하게 웃는데, 배워서 하면 되지, 라고 스님은 자상하게 말씀하시곤 빛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작으면 작은 대로 빛이 있고 크면 큰 대로 빛이 있다면서 누구나 빛을 가지고 있고 그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평소의 습관대로 노트북으로 스님의 말씀을 받아적고 있는데,
여기에만 집중해야지.
갑자기 스님이 정색하면서 말했다.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대화를 해야지.
아, 네. 그제야 나는 스님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대신 노트북으로 스님의 말씀을 받아쓰기에 급급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하게 집중해야 한다는 거죠. 노트북을 덮으면서 상황을 얼버무렸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뭘 놓친 거지? 이후 스님의 말씀을 눈으로, 귀로 집중해서 들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 인터뷰할 때 녹취도 하지만 웬만하면 노트북으로 바로 받아적곤 했는데, 노트북을 덮고 스님의 눈을 보면서 스님이 하시는 말을 귀담아들으니 화제는 더욱더 풍부해지고 친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스님은 사람과의 관계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가르쳐주신 것이었다.


-작가는 본 대로 느낀 대로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작가마다 고해하는 방법이 다르다.

스님이 이동복이란 이름이 적힌, 귀여운 동자상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동복이란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을 해오는 사람이 있다면서 읽어보라고 하신다. 한참 웃었다. 글자 밑에 화살표가 있다. 거꾸로 읽으라는 것이다.

수안 스님은 1957년 출가하여 전통적인 불교 수행을 기반으로 선(禪)의 정신을 시와 전각(도장 조각), 선화 등 다양한 예술 형태로 표현해 온 스님, 1979년 이리역 화약열차 폭발사고 부산여성홀에서 이재민돕기 선화전을 연 이후 2017년 화엄경에 나오는 53선지식을 선화로 그린 선서화 시집 ‘행복주머니’를 출간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의 초청으로 프랑스 상원의사당 룩셈부르크궁, 독일 서베를린, 쾰른초대전과 모로코 카사블랑카 등 여러 나라에서 초대전을 개최하며 세계적인 선화의 대가로 우뚝 자리매김했다. 수안 스님의 작품은 예술적인 가치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 철학과 수행의 가르침을 담은 그림은 사람들에게 선의 세계를 체험과 더불어 영감을 주었다.

이리역 폭파사건 대 연 전시회는 이재민과 아픔을 같이 한 것이다. 힘이 들면 같이 하고 슬픔도 기쁨도 같이하는 것, 성직자든 수행자든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나눠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자비다.

스님은 그것이 이해가 안 되면 스케치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아직 봄이 안 와도 봄 냄새가 푹 난다. 같은 돌을 놓고도 작가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봄이 오면 푸르러지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고 꽃도 따고 꿀도 있다. 그런 세계를 화장세계라 한다. 화장세계는 질문이 가득하다. 우리가 모두 잘 살면 좋겠다. 독자가 보면 즐거운 작품을 만든다. 다 잘 사니까 활동도 한다. 그런 분들이 많다. 우리가 같이 살아야 한다.

스님은 봄을 말했다. 모 신문의 기사를 떠올렸다.

“봄이 오면 잠자던 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화가는 잠잠하던 생각을 일깨워 미지의 생명을 향해 나가도록 돕는 선각자와 같지요.”
스님은 봄이 사람들에게 따스한 기운을 전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소통이 될 때 따뜻한 세상이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스님은 1800년 1900년대 일기를 쓰며 시를 썼다. 1950년 이쪽저쪽에서 아침 9시~11시, 사시의 기운을 받아서 글을 썼다. 꽁보리밥, 죽순을 삶을 때 된장을 넣으며,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 진문이었다. 모든 사람이 잘 살며 즐겨야 한다는 스님에겐 봄은 희망이었다.

↑↑ 문수원 전경

- 을사년은 넉넉하게 나누어


옛날 속담으로 보면 고방에 있는 구렁이가 밖에 나가는 걸 보고 며느리가 넓은 치마로 뱀을 모시고 잘 모셨다. 그런 것이 뱀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뱀을 징그러워한다. 하지만 동서를 막론하고 뱀을 숭상하는 일이 있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즐거운 마음에서 자신의 몸에 뱀을 칭칭 감곤 했다. 그 모습은 조각이 되어 지금 바티칸박물관에서 모셔져 있다. 뱀은 재물을 지킨다. 따라서 뱀은 넉넉함이 있어야 한다.

스님은 올해는 을사년, 푸른 뱀의 해다. 옛날에 고방에 있는 뱀을 이무기, 구렁이라고 했다. 어느 날 그것이 나가는 것을 본 며느리가 큰 치마를 입고 도망가는 뱀을 모시고 흰죽을 끓여 주었다. 일반적으로 뱀을 징그러워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뱀은 생명체를 사랑하고 재물을 지키는 신으로 이집트 클레오파트라도 코브라를 가지고 있다. 재물은 넉넉함이다. 돈만 재물이 아니다.

통도사에 방앗간, 물레방아도 있었다. 나락을 찧을 때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눠주었고 흉년이 들고 기근이 들 때는 솥에 음식을 끓여서 주었다. 기록에도 남아 있다. 누구나 때가 되면 다 나눠주었다.

한때 자비원을 운영한 수안 스님은 경영은 큰 절에서 한다. 그것은 무조건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돌볼 사람이 없으면 다 도우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41년간 만들어온 달력에 담긴 진심

저게 뭐예요? 그림인가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자꾸만 눈길이 바닥에 쌓여 있는 상자에 갔다. 그림을 포장한 듯한 상자가 전시회를 준비하나 싶어서 여쭤보았다.
달력이야.

수안 스님이 상자를 주면서 말했다. 포장을 뜯어보니 2025년 달력이었다. 해마다 달력을 받아보았지만 이렇게 정성스럽게 포장된 달력은 처음이었다. 달력 하나에도 이렇게 정성을 다하시다니. 수안 스님의 세상 사람에 대한 진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달력이 귀하던 시절인 1984년부터 직접 그린 그림으로 달력을 만들어 나누어주면서 봉사를 해온 스님은 올해도 어김없이 달력을 만든 것이다. 소중하게 포장한 달력에는 스님의 사람들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수안 스님의 그림

-세뱃돈을 받았다

누가 1만원짜리 한 다발을 주었다. 돈이 적으면 천원이나 5천원짜리 바꾸는데 작년에는 1만 원권을 사용했다. 1만원에 3천원 보태서 삼천만원 준다고 했다. 모두 즐거워했다. 어린이가 다가와서 1만 3천이라고 했다. 폭소가 터졌다. 

작파였다. 그것은 깨치는 것이다. 옳다고 생각한 것이 옳지 못하면 다음에 실수를 안 하는 것이다. 불교의 정통그림인 단청은 스승과 제자의 뚜렷함이 있다. 상피가 있다. 기술자, 필력이 있다. 이것이 선한 창작이다.

스님은 솔직하게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무장무애, 스님의 자유로운 열정이 담겨져 있는 말씀이 선화처럼 고요하게 마음으로 전해져 왔다. 을사년 한 해는 수안 스님의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가 몇십 년 만에 세뱃돈도 받았다.

“웅상신문은 그냥 신문이 아니다. 자기가 그런 느낌을 받을 때 빛이 난다.”

덕담까지 들었다. 세뱃돈을 넣은 손지갑에는 천진난만 동자가 그려져 있었다.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 동자는 수안 스님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동자로 바로 수안 스님이었다.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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