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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탐방

양산 조선통신사,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부상 기대해도 될까?

김경희 기자 입력 2024.07.17 13:00 수정 2024.07.17 01:00

양산 7번 국도 우회로는 '통신사길'
용당 복원과 함께 통신사길 개발
조선통신사 길 축제 가능

구글 사진 
양산시가 ‘조선통신사’ 가 오가던 길목인 웅상 용당역사 복원 등을 통해 역사문화관광자원화에 나서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에서 일본 막부 장군에게 파견됐던 공식적인 외교 시절로 부산시는 지난 2011년 4월 `조선통신사 역사관` 개관 등 2004년부터 해마다 `조선통신사` 행차를 재현하며 부산의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양산시는 용당 역사 일대에 산재한 각종 역사 자원의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고증할 학술연구 용역에 착수하고 `조선통신사`가 부산 동래로 가기 전 정기적으로 머물던 옛 용당역사를 복원하고 행차 모습 재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난 2023년 양상웅상회야제 개막식 때 조선통신사 행렬 퍼포먼스 재연에 이어 올해도 진행, 지역 예술인 200여 명이 참가하여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알렸다.

나동연 양산시장은 "용당역사 복원과 종합관광레저타운 조성사업은 웅상의 관광 지도를 바꿀 역작이 될 것이다. 대운산자연휴양림, 항노화 힐링 서비스 체험관 `숲애서` 등 지역 관광자원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라며 기대하고 있다.

`조선통신사` 행차 길 복원과 재현은 새로운 양산 문화콘텐츠로 부상할 수 있는 역사관광자원이다. 이에 양산 '조선통신사 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조선통신사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지난 2017년 10월 31일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기록물은 일본에도 막부의 초청으로 12회에 걸쳐 일본으로 파견된 외교문화 사절단의 왕래 과정을 기록한 1607년부터 1811년까지의 자료다.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장군에게 파견되었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인 조선통신사는 경복궁(한양)에서 출발해 동래와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문경, 안동, 경주, 용당(양산) 등을 경유했다.
 
조선통신사 기록물 내용은 통신사가 일본에 다녀오며 있었던 일을 기록한 사행록, 일본의 번에서의 기록인 향응기록, 통신사 사행길의 풍경, 모습을 그린 기록화 등이다.
 
1404년(태종 4년)부터 조선 국왕과 일본 막부 장군은 각각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 해결을 위해 각기 사절을 파견키로 했다. 명칭은 `조선통신사`, `일본국왕사` 등으로 불렸다. `통신`은 두 나라가 서로 신의를 통해 교류한다는 의미였다.

막부 장군이 새로 결정되면 일본 대마도주는 막부의 명령을 받아 통신사청래차왜를 조선에 파견했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은 중앙관리 3인 이하로 정사ㆍ부사ㆍ서장관을 임명하고 300~500명으로 사절단을 편성해 여정에 올랐다.

 한양에서 출발해 부산까지는 육로로, 부산에서부터는 대마도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를 이용해 대마도를 거쳐 시모노세키를 통과해 일본 각 번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의 요도우라에 상륙한 뒤 이후에는 육로로 교토에 갔다.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에 의하면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은 경주 동헌, 부평역(울산 중구 약사동), 용당역(양산시 용당동)과 부산 동래를 거쳐 자성대 부두에서 일본행 목선에 오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아직도 옛 양산 용당역 자리에는 옛길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양산은 1420년 회례사행에서 1881년 신사유람단에 이르기까지 일본으로 가는 길의 중요 경유지였다. 역참인 황산역에서 사행 인원과 물자 등을 제공했으며, 용당동의 용당창에서 통신사 일행이 묵을 때 사행 접대를 했다.

 용당과 접한 서창은 조선시대 울산 대표 창고 중 하나로 통신사를 접대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대일 사행의 최종 점검지로 사행에 대해 접대하고 물자를 제공하는 등 중요하고 부담되는 일을 맡는 등 통신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서창'의 위치는 현 서창동 행정복지센터 자리라고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서창동 행복센터 앞에는 2007년 조선통신사 파견 400주년을 맞아 설치된 표지석 중 하나가 있다. 이 표지석은 경북 안동시나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등 통신사의 이동 경로 중 중요한 장소였던 12곳에만 설치된 것이다. 또 2018년 행정안전부가 7번 국도 우회로 신설구간의 이름을 '통신사로'로 고시하는 등 양산과 조선통신사의 연관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조선통신사 유산은
무엇인가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조선이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막부의 요청으로 일본에 12차례 파견한 외교사절에 관한 기록이다. 

양국이 외교뿐만 아니라 학술, 예술, 산업, 문화 분야에서 교류한 성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아울러 한국과 일본 양국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공동으로 추진하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시대 국왕이 일본의 실권자인 막부장군에게 파견한 양국간 정상외교 사절단이다. 이는 대등한 지위에서 신의를 통해 사절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사·부사·종사관 등 3사가 사절단 400~500명을 이끌었고 이들 일행은 사행 중에 일본의 각 번으로부터 향응을 받았다. 또한 행렬을 기다리고 있던 일본의 지식인·문사들과 필담창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통신사는 경유한 지역마다 서화와 시문, 글씨 등 문화교류의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병풍과 회권, 판화로 만들어져 널리 유행되었다.
 
한편으로 일본인들과 학술적·문화적 교류는 일본 관련 정보를 취득하는 중요한 경로이기도 했다. 통신사들은 귀환한 이후에는 일본에서 견문한 사실들을 충실하게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대표적인 일본 사행록·견문록으로 신유한의 <해유록>, 홍우재의 <동사록>, 조엄의 <해사일기>, 김세렴의 <해사록>, 남용익의 <부상록> 등이 있다.

조선통신사 길,
웅상에 새로운 활력으로


조선통신사는 역사문화의 새로운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에서 일본 막부 장군에게 파견됐던 공식적인 외교 시절로 부산시는 지난 2011년 4월 `조선통신사 역사관` 개관 등 2004년부터 해마다 `조선통신사` 행차를 재현하며 부산의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진행된 조선통신사 축제는 부산 중구 광복로, 조선통신사역사관, 복합문화공간 에프(F)1963, 부산항 여객터미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열렸다.

 조선통신사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테마 특별전에선 통신사 여정을 그림으로 기록한 사로승구도에 묘사된 부산의 모습을 부산 작가 3명이 나전칠기·자수·한국화 기법으로 나타냈다. 

중구 용두산공원에서는 통신사 행렬 재현을 시작했고 조선통신사선을 재현한 목선(149t급)을 활용한 뱃길 탐방도 진행했다. 또한 국립부산국악원에선 소설 ‘유마도’를 춤으로 재해석한 무용극 공연했다.
울산 또한 최초의 조선 통신사 울산 충신 충숙공 이예 선생을 기리는 축제를 개최했다.
 
선택은 운명을 만들고 생각은 현실이 된다고 한다. 역사문화자산인 조선통신사 길 복원과 재현은 웅상에 새로운 활력을 몰고 올 수 있다.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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