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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비가 살짝 내렸다. 내일과 모레 걸쳐 봄을 데리고 오는 비가 더 내릴 것이라 한다. 통도사 자장매는 하마 꽃망울 터트린 지 제법 되었고 사방에서 건네는 봄인사가 꽃망울이 벙글었다는 소식이다. 올해 봄은 지난해보다 더 이르게 오는 듯하다 . 비 내리고 나면 봄이 성큼 한발을 계절 속으로 디밀어 놓을 것이다. 들쭉날쭉 이상기온으로 흔들리던 겨울 등을 밀며 바야흐로 봄이 오는 것이다. 봄소식에 설레며 몽골 여행기는 이어진다.
몽골 제국의 첫 수도였던 하라호름과 한때 티베트의 승려(람)가 1,200여 명이 수도하였다는 엄청난 규모의 사원 에르덴죠를 둘러보며, 인류 역사상 최대의 단일 국가를 건국했던 칭기즈칸의 영화도 덧없이 사라져 지금에 이르고 만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말한 프랑스 작가 미셀 트리니에의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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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로운 초원에 서 있는 세계유산의 유물인 투르쿠왕 빌게를 칭송하는 기념비를 보았고 허술한 유물 수장고를 보며 안타까워했던 하라호름을 벗어나 지금 우리는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자그마치 1,570여 킬로 떨어진 아르항가이에 머물고 있다. 차로 달려도 9시간의 거리다. 절러치(운전사 체기)의 집 가까이 온 것이다. 이미 이야기한 딸아이의 제자 ‘체기’의 집이 있는 솜(읍)으로 왔다. 유목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일행이 초원을 떠도는 사이 게르를 옮겨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운전사가 집의 위치를 전화로 주고받고 하더니 아무리 둘러보아도 풀밭뿐인 길을 달려 그 초원 한 곳에 있는 게르 하나를 표적물로 찾아든 것이다. 지형의 특징도 없이 밋밋한 이 너른 땅에서 달랑 게르 한 채인 집을 정확히 찾아드는 운전자의 그 능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인간 GPS였다.
아르항가이에는 투르크(돌궐)의 유적지가 있었다. 과거의 몽골과 투르크는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문화적으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투르크의 유적지를 찾아 초원을 달렸다. 드넓은 벌판 속 한 형체가 보였다. 돌로 쌓은 투르크의 ‘여름 궁전’이다. 성은 허물어진 채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는 듯하였다. 가이드인 다르항 대학의 부총장님이 열심히 설명했지만, 이방인의 귀에는 그저 소리일 뿐이었으니 안타깝기만 했다.
옆에서 대충 들려주는 이야기로는 트루크 왕의 여름 궁전이라 하였다. 성벽의 그늘은 초원을 누비고 다니는 말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었다. 지금은 허물어져 초라한 모습이지만 당시에는 그 규모가 엄청났었다고 한다. 경이로운 것은 이토록 허허로운 땅에 저렇게 많은 돌이 어디서 나왔을까. 사방을 둘러봐도 평원인데 인구도 적은 나라에서 성을 건축했던 인력은 어디서 왔는지 불가사의 앞에 의문만 꼬리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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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궁전을 둘러보며 이토록 황량한 초원에 돌을 쌓아 궁전을 짓게 한 막강한 힘의 권력자도 풀 끝에 맺힌 이슬처럼 다 사라졌고, 성마저도 허물어져 초원 속 자연인 듯 그 모습을 하고 있다. 여름 궁전과 조금 떨어진 지역에 또 하나의 허물어진 석축 건물이 있다 한다. `겨울 궁전` 이라 했다. 여름 궁전에 비해 예술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생각되었다.
벽돌을 쌓아 올린 모양새나 남아있는 건축물의 모습이 여름 궁전 보다 훨씬 후대에 지어졌거나 설계를 한 사람이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단순하기에 짝이 없는 나의 오류일 수도 있다. 여름 궁전은 이미 그 형태를 많이 잃어버린 상태이고, 겨울 궁전은 그나마 부분 벽체라도 그런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내린 나의 무지한 생각일 수도 있다.
몽골 여행을 하려면 초원을 달리는 바람의 마음으로 밤하늘을 우러르는 성자의 가슴으로 너른 들판에 피어나는 꽃의 눈빛으로 가야 하는 여행지다. 곧 봄이 오면 몽골 여행의 최적기가 된다. 6월부터 8월까지가 가장 좋은 때이다.
한때는 그리도 찬란한 빛이었건만/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진/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오히려 강한 힘으로 살아 남으리/존재의 영원함을/티 없는 가슴으로 믿으리//삶의 고통을 사색으로 어루만지고/죽음마저 꿰뚫는/명철한 믿음이라는 세월의 선물로
- 윌리엄 워즈워드 詩 [초원의 빛]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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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명숙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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