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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즐거운 미술 산책/ 초상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3.03.27 10:11 수정 2023.03.27 10:11

조미혜 봉우별작은도서관 관장

↑↑ 렘브란트 “야경
ⓒ 웅상뉴스(웅상신문)
초상미술이 제일 먼저 발달한 곳은 고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이집트이다. 초창기의 초상화는 주로 권력자들의 것으로 보여지며 자신의 세력과 권력을 나타내기 위한 등신대, 전신초상화들을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막대한 부와 권력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까?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성공한 화가로서 꼽자면 “렘브란트 판 레인”이 있다. 빛의 화가로도 불리며 유럽 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며 특히 네들란드 역사상 중요한 화가이기도 하며 미술사에서도 거장으로 불린다.
 
유화·소묘·에칭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하였고 초상화에서 인간의 성격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풍부한 색채,명암배분을 보여주며 특히 소묘는 그 당시의 암스테르담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렘브란트는 역사화가가 되려 하였으나 신교 공화국인 네들란드에서 교회와 궁정 중심의 종교,역사,신화 주제의 대작 주문보다는 주로 부유한 상인들을 중심으로 한 중상계급의 시민들의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게 되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초상화 뿐만 아니라 성서화,신화,풍경,정물화등 2,000여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그가 통달한 식각판화 같은 경우는 몇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판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예술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인 호감과 인기를 얻고 있다. 

그도 동시대인들은 풍경화나 정물화, 또는 일상생활을 묘사한 풍속화를 더 많이 그렸으며 렘브란트는 초상화가로도 명성을 얻었지만, “야경” 제작이후 인생의 후반기에는 자기 제자를 비롯한 젊은 경쟁자들에게 밀려나 빛을 잃었다. 그가 통달한 또 하나의 주요분야는 식각판화였으며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의 판화들은 비싼 값에 팔렸고, 그의 뛰어난 판화 기법은 몇 세기 지난 지금에도 판화가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렘브란트의 ‘야경’은  제작 당시에는 혹평을 받아 초상화가로의 명성을 잃기도 하였으나 사후에는 네들란드 국립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며 사후 200년 후 그에게 ‘네덜란드 국민화가’라는 칭호를 안겨 주었으며 다양한 변화와 활기를 주제로 하는 바로크 미술의 특징을 네덜란드 특유의 어둠속에 담아 렘브란트의 독창적인 미술세계를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 조미혜 봉우별작은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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