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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뉴스(웅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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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7월15일,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 바다에 전부 수장되었다. 혼비백산한 선조가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 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선조는 “내가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중언부언 한다. 선조는 장군이 부임하자마자 수군을 버리고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한다. 장군은 ‘수군폐지불가’를 주장하며 다음 같은 장계를 올린다. “죽을힘을 다해 싸움에 임한다면 오히려 이길 수도 있사옵니다.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고, 미천한 신도 죽지 않았사옵니다.(尙有十二 微臣不死).“ 장군은 “내가 아직 죽지 않았사오니” 전쟁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며 피를 토하듯 꺾이지 않는 의지를 밝힌다. 당 태종의 대군을 화살 한 대로 물리친 고구려의 참전계경(參佺戒經)은 '의(義)'에 대하여 가르친다. "의로움이란 믿음을 굳게 다져 주는 기운이니, 그 기운이야말로 마음을 감동시켜 용기를 갖게 하며, 용기 있게 일에 임하면 마음이 굳게 다져져 벼락이 내리쳐도 그 기운을 깨뜨리지 못한다. 그 굳고 야무짐은 금이나 돌과 같고, 그 생명력은 큰 강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1894년,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서는 20리를 두고 동학군과 토벌군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려는 참이었다. 토벌군 대장인 진사 '안태훈'과 적군인 동학애기접주 '김 구'는 바야흐로 생사의 기로에 선다. 열아홉 젊은 동학대장 ‘김 구‘의 사람됨을 알아본 ‘안태훈’은 밀사를 보내 "군이 어리지만 대담한 인품을 지닌 것을 사랑하여 토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회유한다. 서로 공격을 중지하자는 밀약을 맺고 ‘안태훈’은 ‘김 구’를 자신의 집에 피신시킨다. ‘안태훈’의 가훈은 '정의'였고 그의 장남은 '안중근'이었다. ‘중근’은 ‘김 구’보다 3살 연하로 상투를 틀고 자색 명주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짧은 돔방총을 메고 날마다 사냥을 다녔다. 영특한 기운이 넘치고 군사들 중 최고의 사격술로 나는 새, 달리는 짐승을 백발백중으로 맞혔다. 잡아온 노루와 고라니로 군사들을 먹였다. 14년 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수많은 환영객들과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이동하고 있었다. 얼굴도 잘 모르는 ‘이토’를 덩치 큰 러시아 군인들 사이로 정확하게 저격한 안중근의 예지력과 사격술은 어려서부터 몸에 베여 있었다. 안중근의 거사 역시 ‘내가 아직 죽지 않았사오니’ 라는 믿음으로 나라를 향하여 끝없는 충성을 바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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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주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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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1일부터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됨으로써 ‘기미년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한반도의 비폭력적인 ‘독립만세운동’은 학생, 아버지, 어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권번의 기생들, 심지어 거지들까지 들고 일어났다. 어린아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이 참여한 셈이다. 당시 국민 중 약 444명에 한 명꼴로 구속되었고, 1,333명 중 한 명이 부상을 입었고, 2,600명 중 한 명꼴로 죽임을 당했다. ‘내가 아직 죽지 않았사오니’라는 온 민족의 독립의지는 곧바로 상해로 번져간다. 1919년 4월 10일, 상해의 임시정부 의정원에서 ‘신석우 선생’의 제안으로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처음 탄생한다. 4월 13일에는 드디어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모두 삼일만세운동의 결과이다.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만주, 연해주, 미국, 일본으로 이어지고, 한민족의 꺾이지 않는 독립정신은 국경을 넘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간다. 당시 세계 인구의 3/4이 몇몇 열강들의 비참한 노예로 전락되어 있었다. 중국 쑨원(孫文)의 5·4 운동,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재 점화에 이어 베트남과 필리핀까지 뒤흔들었다. 중동의 터키와 아프리카의 이집트까지 대다수 민족과 나라의 간절한 소망인 ‘독립운동’이 전 지구를 해일처럼 덮었다.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촉발시킨 평화의 불씨는 인간존엄을 위한 밝고 강렬한 생명존중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도도한 태극기의 물결과 독립의 함성은 ‘내가 아직 죽지 않았음’으로 ‘목숨으로 자유를 쟁취할 것이다.’는 역사적이며 세계적인 ‘한류독립운동’의 시원이 되었다.
1950년 우리는 6.25의 잿더미 위에서 남의 원조로 연명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죽지 않았사오니’의 마음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었고 더욱 찬란한 미래를 열어 갈 것이다. 21세기 대한국인의 새로운 사명은 모두의 고향인 초록별 지구의 평화를 선도하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의 힘’은 그 어느 민족도, 그 어느 나라도, 인류와 지구 보다 크지도 중요하지도 않다는 ‘지구인 의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곧 국조 단군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영원한 진리인 ‘홍익인간’이 아닌가.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