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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뉴스(웅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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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역대 급 태풍이라고 많은 우려를 했지만 비교적 선방했고 다시 ‘해와 달’은 뜨고 진다. ‘해와 달’처럼 변치 않는 것이 또 있으니 바로 ‘나’이다. 내안에 태초로 부터의 ‘숨’과 ‘힘’과 ‘앎’이 모여 있어 ‘내 몸’이다. ‘내 몸’에 ‘모든 것’이 ‘모아지기’ 위해서는 생명이 시작된 이래 단 한 세대의 단절도 없어야 했다. 아버님, 어머님 위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또 위의 증조부님, 고조부님... 모든 조상님들은 온갖 상황에서도 가장 귀한 생명을 나에게 전해주려고 분투하셨다. 명절 차례는 그런 조상님을 칭송하고 후대로 이어지는 나의 분투도 변치 않도록 격려하는 ‘가족힐링’ 상차림이다. 시인도 노래한다.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미당 서정주-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 마디 하면/ 대 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갈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갈깔거렸네
제사는 ‘천지인에 대한 관심’이다. 모든 것을 주신 ‘모두의 하늘에 대한 감사’가 보이지 않는 바탕이 된다. 오곡과 과일을 풍성하게 지어주신 ‘우리의 땅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진다. 끝으로 살가운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람사랑’으로 맺어지는 것이 참 제사이다. 특히 명절제사는 하늘, 땅, 사람이 어우러지는 거대한 감사의 한판이 이다. 내 작은 한 몸이 가정을 위한 ‘효(孝)’와 나라위한 ‘충(忠)’과 세계를 위한 ‘도(道)’의 가치로 확대되니 비로소 철든 어른이 된다. 우리의 제사는 인간의 정체성을 깨닫기 위한 간절한 소망이며 실행을 위해 자신을 닦는 다짐의 자리이다. 대대로 이어오는 정겹고 풍성하고 맛있는 철학마당이다.
결국 제사는 세 가지의 대상과 세 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 ‘몸에 드리는 제사’, 둘째 ‘땅에 드리는 제사’, 셋째 ‘하늘에 드리는 제사’이다. 우리의 몸은 숨을 통하여 하늘의 기운이 들어오고, 먹고 마심으로 땅의 기운이 머물다 가는 곳이다. 때문에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 한민족의 변함없는 진리체계이다. 이 부분을 우리의 귀중한 철학서인 ‘천부경(天符經)’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 깃든 단 ‘하나(一)뿐’인 거룩한 생명을 위하여 숨 쉬고, 잠자고, 먹고, 마시며, 옷을 입는 일상이 다 제사가 되는 축복인 셈이다.
축복의 제사상에는 ‘떡’이 빠질 수 없다. 떡은 곡식으로 만든 ‘먹 거리’ 중에서 가장 정결하니 특히 백설기는 ‘으뜸 제물’이다. 15세기의 문헌에는 떡은 ‘ㅅ+더에 ’ㄱ' 받침으로 표기했다. 심마니들은 떡을 ‘시덕’(함경도), ‘시더구’(평안도), ‘시더기’(강원도)라 한다. 고대 일본에서 제사 때 쓰인 쌀떡을 ‘시토끼(sitoki)’라고 한다. 서울 지방 민요‘ 떡 타령’은 떡을 ’일 년 내내 덕을 주고받는 별식’이라고 정의한다. 심청전의 ‘뺑덕어멈’은 ‘덕이 뺑소니 친 어멈’이다. 밥이나 라면은 끓여서 혼자서도 먹지만 귀한 쌀을 빻고, 떡메로 치고, 고물을 입히고, 정성스레 빚어 혼자 먹는 사람은 없다. 남녀노소, 양반천민, 동네방네,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우리의 떡’이다. 그중 가장 맛있는 떡은 ‘받는 떡’이 아니라 ‘주는 떡’이다. 떡은 곧 ‘덕(德)이 깃든 음식’으로 ‘덕’은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섭섭하고 미워도 정치권에 ‘국민 찰떡’을 나눠주자.
여야가 ‘찰떡처럼 하나’가 되어 제발 민생을 살펴 달라고, K-홍익 떡을 지어 전 지구촌이 나눠 먹자구, 이제 그만 싸우고 뻗어나가 ‘떡하니’ 세계의 중심문화국으로 자리 잡자고, 국민은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올해도 둥근 달님에게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