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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영주 칼럼

한글날 특별 칼럼/가갸날과 한글날.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21.10.08 10:00 수정 2021.10.09 10:00

원암 장 영 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웅상신문 칼럼위원

ⓒ 웅상뉴스(웅상신문)
2021년 10월 2일 프리미어 리그에서 황희찬이 멀티 골을 넣었다. 그의 팀 울버햄튼의 노란 유니폼 ‘백넘버 26’ 위로는 ‘황희찬’이란 이름이 보였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처럼 영어가 아닌 유일한 한글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얼마 전 부터는 프랑스의 대학생들 수 십 명이 모여서 이선희의 노래 ‘인연’을 우리말로 따라 부른다. BTS의 팬덤인 아미는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로 원곡을 따라 부른다. 블랙핑크의 팬들도 마찬가지이다. 유럽, 아시아, 중동, 미국, 중남미등 지구촌 어디라도 K-POP을 따라 부르려면 반드시 ‘한글’을 익혀야 한다.

‘한글’이란 고유명사는 1928년이 되어서야 지어졌다. 한글의 호적명은 ‘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 백성들을 측은하게 여기신 세종대왕께서 거의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 널리 가르치신 바른 소리글이다. 훈민정음은 태어 날 당시는 중국에 대한 무조건 사대주의에 빠진 조정 관리들과 지식인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하였다. 우리글임에도 ‘시정의 속된 글’이라고 언문(諺文), ‘완전하지 못한 글’로 반절(反切), 아녀자들만 익히는 문자라고 ‘암클’이라고 불리었다. 또 “가갸거겨……, 나냐너녀……” 하는 소리로 읽는다고 ‘가갸글’이라고도 놀리듯이 불렀다. 모두 상국인 중국의 글 한자(漢字)에 비하여 우리글이기에 턱없이 부족한 글자라고 지레 스스로 낮춰 부른 것이다. 태생은 더없이 거룩했으나 쫒겨나 저잣거리에서 비루하게 자라났다.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시고도 3년이 지난 1446년에야 세상에 반포하시었다. 모진 반대도 잠재우고 백성들에게 훈련시켜 그 효용가치를 증명 할 시간도 필요하셨을 것이다.

그보다 먼저 옛 조선의 ‘제 3대 단군 가륵’ (BC 2181)께서 가림토(加臨土)문자를 창제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훈민정음의 전신으로 추정 되는 총 38개인 ‘가림토(가림다) 문자’를 잘 익히면 사람으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능히 가른다’는 의미이다. 그보다 더 이전인 약 5900년 전, 배달국 거발한 환웅천제의 명을 받아 ‘신지 혁덕’이 사슴의 발자국을 본 따 ‘녹도문’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한 나라의 문자는 그 나라의 정신이 깃들게 마련이다. 우리의 한글은 이미 날 때부터 천지인 합일정신의 원리에 따라 창제되었다. 그러므로 하늘(ㅇ), 땅(一), 사람(ㅣ), 즉 천지인이 하나 됨을 가장 중요시한 철학적 사유가 창제의 축이 된다. 모가 나서 못나 서로 찌르며 살아가는 모진 사람들이 수행을 통해 땅처럼 바른 네모 같이 어른이 되고, 결국 둥글고 원만한 하늘같은 어르신이 되는 것. 바로 인간완성의 소망철학이 과학적으로 몸의 생리에 맞춰 만들어진 인류지성의 최고 걸작이 ‘한글’이다.

‘한글’은 1910년 대, 주시경(周時經)을 중심으로 한 국어 연구가들이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측근들에게만 알음알음으로 전해졌지만 비로소 합당한 이름을 받게 되었다. 1928년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현 한글학회)가 일제 강점기중에서 신음하는 민족에게 큰 용기를 주기위하여 목숨 걸고 ‘한글날’을 주창하였다. 결국 ‘한글’은 온갖 우여곡절을 견디고 본래의 모습을 찾아 지생(智生)을 갈고 닦아가는 인류 진화의 막대한 효용가치로 자리잡어 가고 있다.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 서문에 당신의 절실한 마음을 남겨놓으셨다.
“나랏말씀이 중국의 말과 달라, 한자와 잘 통하지 아니하여 어리석은 백성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라.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늘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함이라.“

이처럼 한글의 중심에는 한웅천제, 단군성조, 세종대왕을 관통하여 한민족의 정신으로 이어져 오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신조가 입력되어 있다. 이제 영화, 노래, 음식, 드라마, 화장품, 게임 등등 k-예술과 k-문화를 통해 전 세계의 인류의 가슴에서 대량으로 한글의 깊은 철리가 되살아나고 있다. 한국인 뿐 아니라 한글을 사랑하는 전 세계의 그 누구라도 한글을 늘 쓰다보면 마음속에서 절로 피어나는 참다운 인간선언문이 형성된다.

“인간은 그 누구나 천지인이 하나로 녹아들은 거룩한 존재이다. 그런 만큼 그 누구나 차별 없이 정보를 손쉽게 공유하여 본래의 충만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지어다.”
스스로 한글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여, 한글을 더욱 정성껏 가다듬어 온전하게 물려주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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