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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선과 악의 경계선

웅상뉴스 기자 입력 2012.08.13 12:55 수정 2012.10.03 12:55

필립 짐 바르도의 <루시퍼 이펙트>

얼마 전 필립 짐바르도의 <루시퍼 이펙트>를 다시 읽었다. 세상은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은 부모를 죽이고 남편은 아내를 죽이고 친구가 친구를 죽이고...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만약에 나도 극한 상황에 처하면 그런 일을 저지를까.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알고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항상 올바른 행동을 할 거라고 자신할 수도 없고 지금까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선을 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불분명하다. 어쩌면 천사 루시퍼처럼 유혹에 빠져서 평소에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악한 행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게 될지도 몰랐다.
악한 사람은 그 기질에 있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선과 악,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필립 짐바르도. 그는 '썩은 상자 제조자'에 해당되는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썩은 상자' 속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심지어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사악하게 돌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71년 8월 그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계획했다. 모의 교도소에서 동질적인 대학생들에게 무작위적으로 교도관과 수감자 역할을 배정하고 그들이 주어진 역할에 따라서 어떻게 성격 변환을 일으키는지 자세히 관찰했다. 학생들은 진짜 교도관과 수감자처럼 행동했다. 교도관 역할에 몰입한 학생들은 규칙을 어긴 수감자들에게 벌을 주고 독방에 감금하는 등 가혹한 행위를 저지르고 놀랍게도 수감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시스템에 굴복했다. '인간에 의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낯설지 않다'라는,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테렌티우스의 말이 그대로 재현된 실험이었다. 어떤 인간이 저지른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적절한, 아니 부적절한 상황적 조건만 형성된다면 우리들 모두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재연한 듯한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벌어진 끔찍한 포로 학대 사건도 위험에 노출된 교도소 위치, 지도력 없는 상급자, 열악한 근무 환경이라는 상황이 학대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속시킨 시스템이 큰 영향력을 미친 결과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황과 시스템의 강력한 힘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없을까. 잘못된 상황과 시스템에 대부분의 사람이 복종하고 순응할 때,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포로 학대 사진을 외부에 공개한 조 다비처럼 그에 저항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저자는 이들을 '평범한 영웅'이라고 칭했다. 인간 본성의 평등한 속성으로 누구에게나 그런 잠재력은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우리 속에 존재하는 악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고 영웅적인 의지 속에 있는 더 큰 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악의 나락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다./김서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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